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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54년전에 저세상 사람이 될 뻔했다.

by Sky_heaven 2014. 5. 22.

금년에도 아버지 8주기를 맞이하여 7남매가 아버지 산소에 모였다.

아버지 산소에 가기전에 54년전 이세상을 등질뻔 했던 장소를 먼저 들렸다.
그곳은 옛날 그대로가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역시 그당시와는 전혀 다르게 변해 있었다.

산 모둥이에 천수답이 있었는데 들판에서 한참 높은곳에 위치해 있어 당시의 농사짓는 농기구로 물을 이곳까지 끌어오기가 쉽지 않아 천수답 구석에 웅덩이를 파 천수답에 물을 대었다.
웅덩이는 물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깊게 팠는데 당시의 기억으로 가로.세로가 5~6미터정도. 깊이는 어른키 2배정도 였던것 같다. 그러니까 웅덩이의 깊이는 약 3m(산자락부터는 5~6m)는 족히 될것이다.
초등(국민)학교 2학년 1960년 이맘때 이곳에 빠졌던 것이다.

[ 모퉁이가 웅덩이가 있던 자리 ]


초등학교는 집에서 약 4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학년별로 남.녀 2반씩 4개반 총 24개반이 있었는데 교실이 모자라 1,2,3학년은 2부제 수업을 하고 있었고, 그때 나는 오전반이라 오전수업을 하고 정오정도에 친구와 단 둘이서 집에 오는길에 삐비(삘기)를 뽑으려 사고 현장에 오게 됐다.

[ 삐비가 통통하다 ]


이곳은 통통한 삐비가 많이 있어서 친구가 내 발목을 잡았고, 키가큰 내가 엎드려 경사진 웅덩이 벽을 헤집으며 삐비를 찾아 뽑았다.
한참을 뽑고 있던중 친구가 내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는지 발을 놓치고 말았고, 나는 엎드린채로 웅덩이로 미끌어져 들어가 버렸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던 나는 허우적거리며 나오려고 발버둥 치고 웅덩이 벽을 손가락으로 할퀴었지만 도저히 나올 수 가 없었다.
웅덩이에 물이 가득 차지 않고 1미터(물깊이는 2m) 정도 차지 않아 손을 뻘쳐도 잡히는것은 논 흙으로 웅덩이 벽을 다져서 벽에 붙어 있는 벼 폭의 뿌리뿐이었고 이것이라도 잡고 나오려니 이것마져 뿌리가 뽑혀 나올 수 가 없었다.
수영을 잘 하는 친구는 웅덩이를 빙빙 돌면서 빨리 헤엄쳐 나오라고 소리 치지만 나는 도저히 나올 수 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논에 엎어져 있었고(당시 논은 갈지 않은 상태였음), 입에서 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주위에 많은 동네사람들이 둘러 서 있었다.

 

[ 삐비꽃 ]


정신을 잃고난후 몇십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대략 이렇다.
사건 현장에서 우리 동리까지는 300m(직선거리로 200m)정도였고, 300m정도 아래로 뻔히 보이는 논에서 모심기 전에 써래질을 하고 있는 건너 동네 아저씨가 있었는데 친구는 그 아저씨를 소리쳐 부르지 않고 동네로 뛰어갔으나 동네에는 아무도 없었다.

 

 [ 소나무 뒷 편에 우리 동네가 있다(당시에는 소나무가 빽빽하여 사람 다니기가 어려웠음) ]

 

[ 소나무 숲에서 내려다본 1980년대 초반의 우리 동네 ]

 - 중앙 뒸쪽 ㄱ자가 우리집, 사고당시에는 모두 초가집이었으나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개량하여 함석 또는 스레트 지붕

 - 현재는 4집만 존재

 

[ 들판(번지) 가운데에서 아저씨가 써래질 하고 있었다]

 - 지금은 농지 정리를 하여 네모 반듯하나 당시에는 농로가 구불 구불했다.

 - 어렸을때 들판을 번지라고 불렸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적당한 말이 없다.

 
모두가 논에 나아가 일을 하고 있고, 부녀자들은 점심때라 점심을 해 일하는 곳으로 점심을 내갔기 때문이다.
친구는 동네를 돌면서 "정기가 물에 빠졌어요~" 하고 큰 소리 치며 돌아다녔지만 11채 되는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중 마침 논에 점심을 내가고 물을 가지러 집에오신 어머니께서 내가 물에 빠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빠져 있는 웅덩이로 한달음에 달려와 내가 가라 않고 있는것을 보자마자 그대로 뛰어들어 끌어 안았는데 어머니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한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집에 괭이를 가지러 오시다 친구의 말을 듣고 달려오신 이웃집 아저씨가 물속에 뛰어 들어 나와 어머니를 건지셨다한다.


친구가 수영할 줄 안다고 뛰어 들었다면 둘다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때 마침 이웃집 아저씨가 안계셨다면 어머니와 같이 어찌 됐을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은 왕겨 집하장으로 일가 동생의 사업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세상을 등졌더라면 예수를 알지 못하고, 부활의 소망도 없이 영원한 음부에서 울부 짓을텐데 이제는 택한 백성이돼 하늘의 소망,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됐다.

 

오늘 가진 추도 예배에서는 예수님의 부활과 천국의 소망이 있는 우리는 먼저 가신 아버지를 장차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동생들도 영접하여 다 같이 천국 소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 동네 진입 로 : 초등학교에서 오는 길]

 

[ 우측 하단 흙 길이 솔밭길로 동네로 들어가는 길 ]

 

 [ 아버지 산소에 피어있는 엉겅퀴(항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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