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산 묘역을 소규모로 재 조성하다.

Sky_heaven 2020. 5. 28. 07:53

1976년에 종손만의 묘지를 만들어 대대로 물리자는 의도로 선산 5094㎡(약 1,540평)을 구입하였고, 1984년에 그중 약 700여평을 묘역으로 조성하여 다른 곳(육상골)에 있던 증조부모와 조부모의 묘를 이곳에 이장하였다.(조모는 육상골에 모셔진 3분을 이곳으로 이장할 때 같이 하려고 선산 한쪽에 임시로 매장하였음) 
그러나 장사법에 묘지는 주거지로부터 일정 거리가 떨어져야 한다는 이유와 산소로 조성한 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묘를 쓰거나 석재 작업(비석을 세우는 일)을 하면 마을에 좋지 못한 나쁜 영향을 준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묘지를 쓸 수 가 없어 선산의 가치를 잃게 되었다. 실제로 2006년도에 부친을 화장하여 유골로 가져와 매장을 하겠다 하여도 반대를 하여 집안에서 조성한 곳에 장사하지 못하고 능선 뒤쪽은 마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덜 미치는 곳이라 하여 주민들의 허락을 받에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 하였다.

문제는 매년 선산으로 쓸모가 없는 곳을 벌초 하고 관리하는 일에 많은 노력과 힘을 들여 향후 후손들에게 골칫거리가 될 것 같아 200평정도 되는 부친을 모신 곳에 30평정도의 소규모 묘역을 조성하여 4분(증조,조부모)을 모시기로하여 오늘(2020년 5월 27일) 이장하여 묘지 관리가 용이하도록 평잔으로 공사를 하였다.

 

▣묘역 전경

묘역 전경
아래 좌측에서 바라본 묘역(2020년 5월)
아래 좌측에서 바라본 묘역(2013년 벌초후)
아래 우측에서 바라본 묘역(2020년 5월)
아래 우측에서 바라본 묘역(2013년 벌초후), 소나무 뒤가 새로 조성될 묘역의 위치임
위에서 내려다본 묘역(2020년 5월)
위에서 내려다본 묘역(2020년 3월)
위에서 내려다 본 묘역(2013년 벌초후)
가까이에서 본 증조,조부모의 묘
증조부모의 묘
조부모의 묘

▣새로 조성되기 전의 묘역 

새로 조성될 장소에 모셔진 아버지 묘
새로 조성될 장소에 모셔진 아버지 묘

▣새로 조성된 묘역

▣표지(비)석

♥증조할아버지 : 호적에 開國490년(서기 1881년)에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비석에 高宗壬午(서기 1882년)로 선조들이 띠를 중시하므로 출생년도를 1882년으로 함 

   증조할머니 : 호적에 開國492년(서기 1883년)에 출생 단기(檀紀)4292년(서기 1959년)사망

증조부모의 묘

♥할아버지 : 호적에 光武11년(서기 1907년)으로 되어 있으나 비석에 辛丑(서기 1901년)출생 67세 사망으로 되어 있음

   할머니 : 호적에 光武2년(서기 1989년)으로 됨

조부모의 묘
아버지의 묘
묘역 조성후 제사

▣유골 수습

♥증조할아버지(신헌여흥민공:愼軒驪興閔公)의 유골은 상태가 매우 양호 하였다.

愼軒驪興閔公之柩(신헌여흥민공지구)

♥증조할머니(전주최씨:全州崔氏)의 유골은 이곳으로 이장 할때에도 대퇴부 뼈와 일부 뼈조각 몇개만 있었다.

孺人全州崔氏之柩(수인전주최씨지구)
대퇴부 뼈와 몇개의 뼈만 덩그러니 있다.

♥할아버지(유당여흥민공:柳塘驪興閔公)의 유골은 상태가 가장 양호 하였으며 아랫니도 분명하였다.

柳塘驪興閔公之柩(유당여흥민공지구)

♥할머니(전주최씨:全州崔氏)의 관은 비가오면 물이 차 있었던것 같다. 흙은 진흙이며 이곳으로 이장되어 올때에 육탈이 되지 않아 뼈에 붙어 있던 살을 일일이 띁어내는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1981년도에 돌아가셨는데 무슨 이유로인지 2년이 지난 1983년에 이장을 하였는지 모르겠다. 뼈가 썩어서인지 진흙에 묻힌 두개골을 들어올리자 손가락 힘에도 견디지 못해 바스러 졌다. 

孺人全州崔氏之柩(수인전주최씨지구)

▣신 묘역 조성

♥터 닦기

♥증조부모의 묘

♥조부모의 묘

♥표지석(비석)설치

♥잔디 입히기

♥묘 중심으로 설치된 표지(비)석

▣기존 비석

♥증조부모

♥조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