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나지않는 회갑
2013년11월26일(음10월24일)로 만 60, 회갑을 맞이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 회갑때는 온 동네 사람뿐 아니라 집안 일가 친척 모두 초청하여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잔치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내 나이 8, 초등학교 2학년 어린나이지만 워낙 잔치를 크게해서인지 기억이 난다. 당시 할아버지는 백발에 수염까지 희었고 항상 흰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셔서 꼭 산신령과 같았고, 농사도 많이 지었으나 농부같은 작업복을 입은 모습은 내 기억에는 없다. 농사일은 아버지께서 머슴과 같이 지었고 할아버지는 한량으로 서울에 계신 작은아버지 댁에 자주 가 계셨다. 당시 어린 나이에 나이들면 다 그러는줄 알았다. 할아버지처럼 한량노릇 하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할머니 회갑은 기억에 없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4살 많으니 내 나이 4세였는데 할머니 환갑사진에 나의 모습은 귀공자였다. 당시 작은아버지께서 소령으로 복무중이어서 꽤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생일이 3개월 빠른 작은집 형과 똑같이 옷을 입고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나를 장손이라고 항상 작은집 형보다 먼저 챙겨 주셨다.
아버지는 1984년 국제상사 대리로 근무할때 잔치를했다. 이때만 해도 동네 잔치를 해야하는 풍습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일가 친척을 초청해 하루종일 잔치를 하였다. 당시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줄여 절제를 많이 하셨지만 술을 워낙 좋아하셔서 한번 술을 드시면 말술을 드셨으며, 주위에 아버지처럼 많이 드시는분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술로 건강을 많이 해치셔서 농사일을 어머니께서 짓고 계셨다. 아버지께서 술과 노름으로 많던 재산을 탕진하여 논과 밭이 별로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런 어머니셨기때문에 어머니 환갑때(1992)는 여행을 보내드리려 했으나 어머니께서 동네 잔치를 해달라해서 아버지때와 같이 동네사람들과 일가 친척을 초청해 잔치를 해 드렸다. 당시에는 잔치와 여행을 비교하면 잔치하는쪽이 약간 많은것 같았다.
지금은 환갑잔치라고 하면 우습게 여겨진다.
대부분 가족과 식사하고 여행을 가는 분위기이다.
딸 출산예정이 11월17일이고, 내 생일이 26일이라 딸이 밖을 나갈 수 없고, 어머니께서 병원에 계신관계로 형제도 부르지 않고 집사람 생일이 있는 주 토요일인 11월 2일에 가족끼리만 식사하는것으로 환갑잔치를 대신하기로 하여 그때 식사를 했다. 형제들이 그냥 있을 수 없다고 200만원을 모아 나중에라도 여행경비에 보태라고 보내줬다.
막상 환력일이 돌아오니 아이들이 그냥 지나가기가 섭섭했던지 밖에서는 못하더라도 집에서 요리라도 시켜먹자고 한다. 또 마침 전에 같이 파트너로 일했던 직원이 생일케잌을 보내와 그걸로 오늘 11월30일에 촛불을켜고 축하송를 불렀다. 그렇게 단촐하게 환갑잔치(?)를 했다. 그래도 너무 행복했다. 지난 11월26일 내 생일에 갓 태어난 외손녀가 있었고, 자기들은 어떤 생각으로 교제하는지 모르지만 아들 여자친구가 같이해 줘서이다.
어머니가 회복되고나면 그때 집사람과 같이 중국 단샤 칠채산을 보거나 세계 3대폭포중 하나(가능하다면 이과수폭포 그런데 경비가 만만치 않다)를 관광하고 싶다.
[ 단샤지형 칠채산 - 자헌류장(紫軒流長)인용 ]
http://blog.daum.net/jahun10/16510652
[ 이과수 폭포 - 구름마을사람들 인용]
http://cafe.daum.net/thdtjswo/jJjw/11?q=%C0%CC%B0%FA%BC%F6&re=1